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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이야기] 갑자기 걷지 못하는 어르신1 조회수 : 601

*환자 진료 에피소드를 재구성하였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은 모두 허구입니다.

가을도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이제 신경과 외래 진료도 마무리 되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대학 후배인 내과 의사 이정국 선생이었다. 이선생은 후배지만 힘든 전공의 수련 시간을 응급실과 중환자실, 당직실에서 같이 보낸,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하게 지내는 형제 같은 사이다. 나는 내과 협진이 필요한 환자가 있을 때 마다 이선생에게 부탁했고, 반대로 이선생도 환자에게 신경과적 증상이 생기면 나에게 편하게 연락하였다. 

“오 정국아 무슨 일 있어?”

“형, 내가 작년부터 당뇨로 치료하던 어르신이 있는데, 오늘 외래에서 보니까 평소하고는 좀 달라서 연락했어. 이틀 전부터 잘 걷질 못하신다네...”

“에구 그랬구나. 마침 오늘 예약하신 분들은 진료 다 마쳤는데, 지금 전과해주면 바로 봐드릴게.”

“그럴게.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얼마 후 63세 남자 어르신이 휠체어를 타고 부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에 측정한 혈압은 150/100mmHg로 다소 높은 편이었다. 먼저 부인께 어찌된 건지 여쭤보니, 남편은 15년 전부터 당뇨를 진단받았는데 약을 불규칙적으로 복용했으며 30년 간 핀 담배는 끊지도 않고 음식 조절, 금주와 운동 등 건강관리에 소홀했다고 한다. 이틀 전에 자고 일어났더니 어르신이 잘 걷지 못하고 소변도 바지에 봐서, 전날 마신 술 때문에 그런가 좀 지켜봤는데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질 않아 오늘에서야 이선생에게 진료 받으러 온 것이었다.

환자는 눈도 잘 뜨고 있었고 지금이 몇월 몇일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원래는 말도 잘하는 편이라고 부인이 말해줬지만, 환자는 자신의 주변에 조금 무관심해 보였고, 내가 질문을 해도 귀찮아해서 자세한 인지기능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팔다리의 근력을 확인했더니 앉은 상태에서 오른쪽 무릎과 발을 힘겹게 겨우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왼쪽에 비해 분명히 약해져있었다. 나는 양쪽 발꿈치에서 바깥쪽을 따라 살짝 긁어보았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펴지면서 위로 솟았다. 바빈스키 징후(Babinski sign) 양성. 오른쪽 다리의 마비가 뇌신경의 문제로 발생했음을 의미했다.

“부인, 어르신께서는 오른쪽 다리가 약해져 있는데 아마도 뇌 안에 병이 생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당뇨와 담배는 뇌혈관이 좁아지는 흔한 원인이라 아마도 뇌혈관이 막혀서 뇌 세포가 손상 받은 뇌경색일 것 같아요. 바로 입원해서 MRI 검사부터 해보고 빨리 치료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설명하자, 부인은 눈물을 보이며 대답했다.

“아이고, 내가 맨날 이 양반한테 당뇨 치료도 잘 받고 담배도 끊으라고 해도 안하더니 결국엔 이렇게 됐네요! 요즘 육십은 청춘인데, 벌써 이러면 난 어떻게 살아요...”

“그래도 아직은 증상이 심하지 않고 지금부터라도 치료를 잘 받으면 좋아지실 수 있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 테니 아직 포기하지 말고 같이 힘내 봐요.”

나는 부인을 위로해드리고 입원장을 내드렸다. 부인께서 입원장을 가지고 입원 접수를 하러 원무과에 가있는 동안, MRI 검사실에 전화를 걸어 급하게 검사를 부탁했다. 다행히 오늘 검사를 예약했던 분이 오지 않아, 어르신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뇌MRI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환자가 답답한 MRI 기계 안에서 참지 못하고 움직이게 되면 검사할 수 없으므로, 나도 검사실에 가서 같이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부인이 어르신을 모시고 검사실에 도착해서 나는 주의사항을 먼저 설명드렸다.

“MRI는 X레이나 CT 같이 유해한 방사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시계나 열쇠처럼 금속으로 된 것들 가지고 계시거나, 마그네틱선이 있는 신용카드 같은 것들은 다 꺼내고 들어가셔야 해요. MRI 기계는 커다란 자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가지고 들어오시면 날라 다니거나 고장이 날 수 있어요.”

이제 환자를 MRI 실린더 안에 눕힐 차례다. 환자를 눕히고 검사를 시작하면, 실린더를 둘러싼 대형코일이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게 된다. 이 자기장에 의해 환자의 몸을 구성하는 수소 양성자들이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정렬한다. 여기에 약간의 라디오파 에너지 펄스를 가하면 수소 양성자의 일부가 반대방향으로 뒤집어졌다가 금방 원래 위치로 되돌아오는데, 이 과정에서 두 번째 라디오파 에너지 펄스가 방출된다. 이 두 번째 펄스, 즉 라디오파의 메아리 신호를 분석하여 각 원자의 위치를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 데이터를 컴퓨터로 보내면 스크린에 환자의 뇌 영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스핀에코 기법이라고 한다.

“땅땅땅땅”, “따르르르르”. “삐이이이”

 환자가 소음 때문에 힘들지 않도록 스펀지 귀마개를 해드렸지만 MRI 기계 특유의 소음이 귀를 찔렀다. 답답한 MRI 실린더 안에서 참지 못하고 움직일까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 환자는 잘 참아주었다. 능숙한 MRI 검사 기사의 작업으로 드디어 T1, T2 강조 영상, 확산강조영상(diffusion weighted image, DWI), 경사 에코(gradient echo, GRE)영상, 액체감약반전회전(fluid attenuated invertion recovery, FLAIR)영상, 그리고 혈관(angiography)영상이 차례로 모니터에 나오기 시작했다. 좌측 전뇌동맥의 뇌량주위동맥(pericallosal artery) 영역에 해당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의 전방 1/3과 좌측 내측 전두엽 부위의 뇌경색 소견이었다.

부인께 뇌MRI 검사 영상을 보여드리며 남편에게 뇌경색이 확인되었음을 알려드렸고, 이제 입원해서 약물치료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뇌경색으로 이미 손상 받은 뇌세포는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막힌 혈관으로 인한 뇌혈류의 부족으로 아슬아슬하게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 주변의 세포 영역(ischemic penumbra zone)은 초기에 잘 치료된다면, 영향 받은 뇌세포의 기능을 되돌릴 수 있고 임상 증상도 호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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